신입전문의 소감

전문의시험
수석합격자의 전문의 생활,
길고도 짧았던 2년

Laboratory focus 위원회 소식
이호원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되도록 길(way)은 보행자가 필요로 하는 곳에, 선물(gift)은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리고 글(article)은 독자가 필요로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24년 3월 현재,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과장 및 임상진료조교수로 재직중인 이호원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이력을 보태자면, 2년 전 (2022년도 제 65차) 전문의 자격시험에서 공동수석의 영예를 안았고, 이 영예를 토대로 현재의 집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처음 집필제안을 받았을 때, ‘전문의시험 수석합격자의 전문의 생활’이라는 주제가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분명 다른 어떤 분께서 궁금해 하시거나, 혹은 도움을 얻어가실만한 주제라고 생각되었죠. 그만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의욕도 충만하였지만, 서두에 언급한 제 생각과 마찬가지로 많은 분들의 필요(need)에 부합하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객관화가 잘 안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나름의 묘책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저자가 직접 독자들의 필요(need)를 찾아나서는 것이죠. 다만 모든 분들의 그것을 수렴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기에, 각 연령층의 대표격으로 나서주신 네 분의 질문에 제가 답변하는 것으로 글의 테마를 정했습니다.

첫번째로, 가장 어린 연령대이자 의국 후배인 이정준 선생님(가톨릭중앙의료원 진단검사의학과 전공의 3년 차)과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이정준 : “반갑습니다 선생님. 우선 상투적이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수석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본인 : “하하하. 나도 상투적으로 대답해도 될까? 단순히 합격에만 목표를 두지 않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 진짜야.”

이정준 : “흐음. 전문의 시험에도 소위 말하는 ‘킬러 문항’이 있나요?”

본인 : “응. 난 그렇게 생각해.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 알았을 것 같은 문제가 있긴 있었다. 뭐 이것도 내가 대단해서 알고 있던 것은 아니고, 몇 년 전 예능프로그램중 연예인이 의대커리큘럼을 밟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인상깊게 지켜봤던 관찰소견이... 이 이상의 설명은 생략할께. 아무튼 정준이도 공부만 하진 말고, TV도 열심히 봐.”

이정준 : “명심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전문의 업무를 잘해나가려면 어떤 부분을 잘 배워두면 좋을까요?”

본인 : “정준아. 이 질문에 대해 네 앞에서 폼나게 훈수를 두고 싶지만, 아직 내가 모자란게 많네. 전공의, 그리고 임상강사때는 주로 (판독과 판정, 상담 위주의) 증례 해결 능력에 비중을 두었는데, 지금 단계의 업무는 교과서를 찾아봐도 없는 실리적인 부분이 많더라. 그래도 진검의로서의 본분은 앞서 말한 증례해결 능력이라고 생각해. 지금 너의 단계라면 모든 파트의 루틴업무에 충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정준 : “네 선생님. 혹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로서 마음 속에 가져야 할 한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본인 : “응. 이것에 대한 답변도 몇 십 년 지나 내가 깨우친 바가 있다면 그 때 해줄께. 부디 그 때까지 건강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자꾸나.”

이정준 : “마지막으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를 꿈꾸는 전공의 분들에게 응원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본인 : 내가 진검지원을 고민하던 당시, 과 특유의 진입 장벽이라 여겼던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정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가야겠네’라는 우려 가득한 부분이었지. 지금도 너를 비롯한 의국 후배님들, 그 리고 이따금 전국 유수의 후배님들을 마주할 때면 정말 그런 분들이 들어오신 것 같아 나도 긴장하게 돼. 이건 진짜야. 진단검사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밟고 계신 분들 대다수가 수준 이상의 지능과 섬세함을 지닌 분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이 생각 자체가 이 글을 읽고 계실 후배님들께 고무적이길 바래.”

여기까지 이정준 선생님과의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두번째로 저와 비슷한 연령대로서, 의국 내 가까운 선후배 관계였던 정진 선생님(서울성모병원 진단 검사의학과 임상진료조교수)과 한재호 선생님(의정부 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임상강사)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진 : “전문의 자격시험이 누군가에겐 합격만 하면 되는 시험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데, 열심히 준비하게된 계기가 있어요?”

본인 : “제 인생에 있어, 책상 앞에 앉아 오롯이 공부만할 수 있는 기회는 (당분간) 이 수험생활이 마지막일 것같았어요. 이 기간에 대해 스스로 의미부여하길, ‘지난 수련기간 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점검받되, 미쳐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히 보완한다’ 였습니다. 전공의때부터 제 목표가 ‘모르는 것이 없는 진검 전문의’ 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 목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리 마음먹어야 했죠.”

한재호 : “(앞서 이정준 전공의 선생님도 분명히 질문했겠지만) 수석의 비결을 한 번 더 상세히 말씀해주세요.”

본인 : “상세히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첫번째로는 ‘마음가짐’이며, 앞서 정진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준비물’입니다. 선생님들께서도 늘 지켜보셨다시피 저는 수련기간 내내 모든 파트를 재밌어했죠. 연구보다는 증례해결이 재밌었기에 늘 교과서와 가이 드라인, 그리고 공신력있는 논문과 일부 발표자료들을 솎아 저만의 교재를 만드는 것을 즐겨왔습니다. 전문의 시험 수험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진단검사의학 교과서 6판’을 베이스(base)로 하여, 앞서 소개한 저만의 교재를 잘라 교과서 군데군데 (내용에 걸맞게) 첨가하고 가공하였죠. 이른바, ‘단권화’를 마치고 나니, ‘천하무적의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것만 잘 씹어먹으면 된다’라는 느낌이랄까요.
세번째로는 ‘공부방법’입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자 면, ‘진단검사의학’내 여러 파트가 있고 때때로 같은 내용이 중복되곤 합니다. 예를 들면, CMV는 (교과서 6판 기준) ‘미생물’ 챕터 824쪽에서도 소개가 되고, ‘진단면역’ 챕터 1039쪽에서도 소개가 되죠. 그런 경우 저는 824쪽 여백에는 ‘Go P1039’를, 1039쪽 여백에는 ‘Go P824’를 적어놓습니다. 이렇게 제 나름대로의 연결 후 3회독 정도를 진행하다보면, (향후 어느 페이지를 먼저 접하던) 다른 페이지의 내용 또한 연상되고, 더 나아가각 내용의 파생내용들 또한 중첩됩니다. 하나를 보면둘 그 이상이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물론 상기 열거한 제 비결이 절대 정답은 아니고, 현재의 저도 더 나은 학습방법을 좇고 있습니다. 아마도 각자의 능력과 방법, 그리고 운이라는게 있겠죠?”

정진 : “당시 공부해놓은 내용들이 현재 전문의 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나요?”

본인 : “절대적인 자양분(滋養分)이죠. 선생님들께서도 동의하시지 않나요? 더구나 저는 (현재 근무하는) 병원의 실정 및 직책의 특성상 모든 파트를 두루 알아야 하는데, 당시 익힌 지식으로 증례/상황에 접근하거나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 모든 선진지식들이 당시의 지식으로부터 뻗어나감을 느껴요. 제 개인적으로, 전문의 자격시험 당시의 지식이 온전하다면, 향후 전문의 생활에 있어 최소한의 선방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두뇌의 에이징커브가 언제 도래할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의 소실로서 유지되는 것이 목표에요.”

전공의 시절 든든한 동료였던 정진 선생님, 그리고 한재호 선생님과의 대화도 이만 마무리하였습니다. 마지 막으로 저의 전공의 및 임상강사 시절 은사님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셨던 제갈동욱 선생님(서울성모 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을 뵙고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제갈동욱 : “고생이 많네요. 전공의 때 특별히 좋아했거나 혹은 어려워했던 파트가 있었나요? 그리고 전문의가 되어서는?”

본인 : “(앞에서도 같은 답변을 하였지만) 모든 파트를 다 좋아했습니다. 이는 전문의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에요. 진검이 참 재미있는 것이 각 파트마다 개성이 뚜렷하기에, 저 같은 욕심쟁이들에겐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요. 그래도 이른바 ‘최애’를 꼽자면... 흐음... 어렵네요. 호기롭게 기권하겠습니다 교수님!”

제갈동욱 : “아이고 알겠습니다. 또 궁금한 것은, 당시 시험공부가 추후 논문을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요?”

본인 : “연구, 그리고 그 결정체인 논문작성에 있어 저는 아직 ‘형성의 과정’에 있는지라 자신있게 대답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 다만, 수줍은 제 사견으로는 유야 무야(有耶無耶)합니다. 실제로 그럴싸한 원저 한 편을 완성시키는데 필요한 전문적 연구설계론이나 통계응 용론은 시험범위 내 존재하지 않았죠. 하지만 교과서를 통해 얻었던 지식이 배경이 되고, 이 배경을 토대로 최신 지견을 습득하며 각자의 연구주제를 떠올릴테니 분명 영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공부를 많이 해놔야 연구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연구를 많이 하게되면, 또 수반되는 공부들이 있을 것이고요.”

제갈동욱 : “재미있는 관계네요. 요즘도 연구를 많이 하시나요?”

본인 : “우리 제갈동욱 교수님과 함께 많이 하고 있죠. 전공의시절부터 길잡이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교수님께선 저에게 ‘어디 한 번 해봐’가 아닌, ‘같이 한번 해보자’는 느낌을 주셨었죠. 이것이 제게 큰 귀감이 되어왔습니다. 항간에 누군가에 대한 평판을 구할 때, 대상자의 윗사람 의견만을 수집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아랫사람의 의견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갈동욱 : “별말씀을요. 쑥스럽습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 드릴께요. 올해 교수, 더구나 과장이 되셨습니다. 각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본인 : “의료기관 내 진단검사의학과의 위치와 역할이란, 컴퓨터로 비유하면 ‘하드웨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그것이요. 하드웨어가 우수해야 소프트웨어가 빛을 발하듯, 진검의 능력이 곧 병원의 총체적 능력이고 결국 환자의 안녕이라 생각합니다. 비단 환자가 아닌, 건강인의 더 나은 안녕에도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죠.
이따금씩 업무를 보면서 일이 잘 풀릴 때면 ‘역시 이 큰건물에 나같은 사람 한 명쯤은 꼭 있어야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껴요. 사실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도 ‘그래도 이 큰 건물에 나같은 사람 한 명쯤은 꼭 있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있음을 느끼려 하고, 자부심을 느끼려 해요. 이상입니다.”

여기까지 나름 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스스로 설계한 집필방식이었지만, 의도와는 별개로 정말 의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린 연령층으로부터 순차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스스로 발견한 부분이 있다면, 답변에 있어 점차 주관을 숨기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짧고도 긴 소회(所懷) 과정 속에서 제 자신도 본능적으로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에 적응해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제가 어떻게 변해있을 까요? 주관과 객관을 저울질하는 모습? 혹은 둘 중 하나로 가득 찬 모습? 그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두렵지만 재미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집필기회를 주신 대한진단검사의학회 관계자 분들, 집필을 도와주신 교수님 및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또한 함께 글을 쓸 것을 권유했으나, 수줍은 겸손 및 되려 커피쿠폰을 벗삼은 응원을 보내주신 수석동기 김혜린 선생님(부산대 학교병원)과 과거 그리고 오늘의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