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보존위원회 기획연재

Arnold O. Beckman 박사의 분광광도계,
물질 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II)

Special Issue 고시위원회 안내

기획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역사보존위원회
편집 ㈜성현메디텍 진단검사의학 역사전시관

Klett Bio Colorimeter는 임상 검사실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분석 장비였습니다. 이 모델의 발명가인 Robert E. Klett은 베를린 태생으로 1905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1916년에 Klett Manufacturing Co.를 설립하였습니다. 1945년 우리나라에서 Klett colorimeter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연세의대 진단검사의학 교실사에 있습니다.

“나는 청량리 구 성대 이공학부 교사를 쓰고 있던 미 육군 제34종합병원 검사실에 수시로 나가 견학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중략) 그 때 그 병원 검사실장으로 계시던 군의중령 Ellington이란 분은 키가 크고 벽안 금발인 스칸디나비아계 사람이었는데 생화학검사실 주임으로 일하고 계셨다. 나는 위생병들이 기사로 일하는 것을 견학하였는데, 검사실 시설로는 세브란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우선 혈당검사부터 시작하여 배우는 대로 세브란스에서도 실시하게 되었다. 시약과 Folin-Wu 시험관도 얻었다 썼다. 마침 먼지로 쌓인 Klett-Bio 비색계가 발견되어 청소하여 썼다. 본래 화학에 우둔하였던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정량분석이라 큰 만족감을 주었다. 혈당에 자신이 생긴 후 BUN, 혈청단백 등 쉬운 검사부터 하나 하나 준비하여 실시하였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진단검사의학 교실사 (1895-2008), page 28.
역사회고록: 광복전후의 세브란스 검사실과 잊지 못할 인물들: 최선학 집필 (연세의대 1945년 졸업, 최동(崔棟) 교수의 아들-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Medical Center 명예교수)

그 후에 텅스텐 광원으로 사용한 건전지 식의 현장용 분광계로는 Coleman사에서 생산된 모델 주니어 6A photometer가 있습니다. 군용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6.25 전쟁 종료 후 미군에서 불하받아 남대문세브란스병원, 수도의과대병원(우석대병원, 고대혜화병원), 수도육군병원, 대부분 6.25 전쟁 후에는 미군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검사실을 운영하였는데 검사실 물품과 시약들은 일회용품 없이 소독하여 재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검사 메뉴얼은 미군 육군이 제정한 표준교본인 TM BOOK을 구하여 사용하거나, 필사본을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Fig. 4. Klett-Bio 비색계
(성현메디텍 역사전시관 소장)

1958년 9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황무지와 같은 진단검사의학을 개척하신 세브란스 병원 이삼열 교수의 Coleman사의 6A spectrophometer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의 분광광도계의 변천사를 잘 보여줍니다. 고 이삼열 교수의 자서전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제2편 82 페이지 내용을 원문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내가 처음 출근하였을 때 눈에 띄는 검사장비라고는 Coleman의 6A spectrophotometer가 유일한 것이었다. 6A는 전기 대신 건전지를 쓰는 model이다. 전기를 믿을 수 없을 때니 차라리 건전지가 낫다는 것이었다. 전기는 들어올 때보다 안 들어올 때가 더 많았다. 수술하다가도 전기가 나가면 발전기가 돌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판이었다. 요즘도 그런 조항이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당시는 자체 발전시설의 유무가 병원개설 요건의 첫째 조건이었다. 그래서 검사실에서는 자동차용 battery를 두 개 연결하여 놓고 썼다. 아침에 출근하면 첫째로 하는 일이 충전된 것과 방전된 battery를 바꾸어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반대로 저녁이면 또 충전이 되도록 코드를 바꾸는 작업을 잊지 말아야 하였다. 이 Coleman 6A는 지금도 찾으면 창고에 하나쯤 있음직도 한데 우리로서는 보존할 문화재가 아닐까 싶다.”

(한들(일야) 회고록 제2편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삼열’ 발췌)

Fig. 5. 이삼열 교수와 Coleman 6A (성현메디텍 진단검사의학역사 전시관 종이작품과 사진)

당시 Coleman사 제품의 한국 대리점은 명동에 위치했던 신한과학으로, 신한과학은 해외 주요 과학기기의 수입창구였습니다. Coleman사의 염광광도계 한국 1호는 ‘정건강관리소’에서 사용하였고 염광광도계 한국 2호는 ‘남대문 세브란스 검사실’에서 사용하였습니다. 미국 Coleman사는 colorimeter가 주도하던 비색법을 이용한 검사장비 시장에 분광광도계를 선보이며 주도적으로 성장하였지만, Beckman이 새로운 기능과 기술로 출시한 Beckman DU 제품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Beckman DU 분광광도계가 사용된 기록은 고 의당 김기홍 박사의 ‘한국 임상병리학의 초창기-1960년대’ 글 (대한임상병리학회지 창간호 심포지움에서 ‘한국에서의 임상병리학’이란 주제로 발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한임상병리학회지 제1권 제1호(1981년)
도서 ‘의당 김기홍’ 표지

고 의당 김기홍 박사는 국내 진단검사의학의 초석을 다진 의학자이며 교육자, 헌혈운동의 선구자이며 탁월한 병원 경영자로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히메지 고등학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편입, 1947년 7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그 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입대해 그곳에서 미군의 높은 의료기술과 병원 시스템을 경험하는 중에 특히 환자의 혈액을 비롯한 각종 가검물을 이용한 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진단검사의학’ 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나게 됩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초대 회장을 맡으셨던 진단검사의학의 개척자인 고 의당 김기홍 박사님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1960년대 초에 국내에서 사용된 검사용기기로는 서울대학교병원 Van Slyke 장치, Klett-Summerson, Beckman DU, Beckman Flame photometer, 세브란스병원에 Van Slyke 장치, Coleman Junior와 Spectronic 20 photometer, Coleman Flame photometer, NMC(국립의료원)에 Beckman DU, Beckman B, Beckman C, Evans Flame photometer가 있었으며, 자동기기로는 1963년 국립의료원에 자동혈구계산기인 Cellascope가 도입된 것이 처음이며 이것 이외에는 1960년대에 자동기계의 도입은 없었다.”

(‘대한임상병리학회지 1981년 제1권 제1호’ 8-9page 발췌)

세계 최초의 자외선 흡광 광도계인 ‘DU 분광광도계’의 역사적 배경과 Arnold O. Beckman을 통해 진단검사의학 분석 장비의 역사와 인물을 조명해보면서 1960년대 우리나라의 분광광도계 초기 도입 역사도 되짚어 보았습니다. 진단검사의학 분석 장비가 담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함께 마주할 때 더욱 깊어집니다. 오늘날 진단검사의학 검사실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내기 전까지 앞서 걸어간 많은 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되새겨봅니다.

[참고문헌]
1. Arnold Thackray, Minor Myers, Jr. Arnold O. Beckman: One Hundred Years of Excellence. foreword by James D. Watson. Chemical Heritage Foundation, 2000.
2.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진단검사의학교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진단검사의학 교실(1895-2008).
3. 한들(일야) 회고록 제2편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삼열’
4. 대한임상병리학회지 제1권 제1호, 1981.
5. 박두혁. 의당 김기홍. 도서출판 더숲:서울, 2016.
6. Wikiwand.com (DU spectrophotometer 사진)
7. 성현메디텍 진단검사의학 역사전시관
8. digital.sciencehistory.org. Science History Institute, Klett Bio colorimeter.